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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2 고난의 의의 (意義) (Ⅱ) (욥 42:1-6)
작성일 :  2020-02-07 10:22
이름 :  admin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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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 살던동방 우스 땅의 큰 사람 욥에게 죽음에 이르는 극한 고난의 태풍이 불어 닥치고 말았습니다. 의인 욥의 고난은 우연이었을까? 돌발적이었을까? 무의한 것이었을까? 아닙니다. 우리는 의인 욥의 고난의 의의를 성경에서 그 대답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 그것은 절대하신 하나님의 주권신앙을 더욱 확고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자존적(自存的) 영광, 그 영예로운 속성과 완전성, 그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 결코 제지당할 수 없는 그의 전능, 상상할 수 없는 그의 영광, 결코 꺾일 수 없는 그의 정의, 도전 받을 수 없는 그의 엄위하신 주권을 더욱 깊이 체험하게 하는 고난이었습니다.

 

. 욥의 믿음의 진보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 5,6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 회개하나이다.라고 한 고백을 봅니다. 욥의 이 말은 그가 그토록 심하게 당했던 고난의 의의를 확실히 대답해 주는 내용 중 하나입니다. 이는 곧 환난 중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실감했다는 것으로 고난은 욥의 신앙을 성장시킴에 절실한 수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성화적(聖化的) 수단의 내용은 어떤 것들인가

1. 죽음의 실존에 대한 바른 이해였습니다. 욥은 환난을 당할 때 죽는 줄로 알았습니다(6:8,9). 죽음은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 이때 불신자들은 죽음을 우연이나 자연적인 것으로 돌리고, 싫지만 받아드립니다. 그리고 자살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의 죽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믿었습니다. 결코 자신의 목숨은 우연이거나 혹은 자신에 의해서 끊어질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14:5). 

2. 내세(天國) 소망의 신앙입니다. 욥은 극한 환난 중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뜻하신 계획대로 자기를 데려갈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기뻐하고 사모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세계. 곧 내세(天國)를 소망했기 때문입니다(19:25-27). 내세 신앙의 체험은 죽음이라고 하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더 확실해지고 분명하게 직감되어지는 것입니다

3. 기도의 인내였습니다. 죽음을 실감한 욥은 기도밖에 할 일이 없었습니다. 욥의 생각대로 하나님은 빨리 그를 데려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여러 달째 곤고한 맘들로 계속 아파하고 몸부림 쳤습니다(7).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린다고 했습니다(16:20). 그 눈물 속에 올리는 자신의 기도는 정결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인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그 인내를 기도와 함께 감수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욥의 인내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5:11). 

4. 말씀의 은총입니다. 그러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6:10)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의 태풍은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 당신의 말씀을 지키게 하는 은총의 방편이었습니다. 욥기 38장부터 41장까지는 고난의 태풍 속에서 하나님이 욥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곧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당신의 주권적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38:1). 하나님은 욥을 고난의 태풍 가운데 두시고 위대하신 당신의 주권적 창조와 통치와 섭리를 교훈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욥은 고난 속에서 주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위대하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믿는 고도의 영적 성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고 했던 것입니다

5. 종의 신분을 확인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허락하신 환난의 태풍을 정돈하실 무렵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괴롭혔던 세 친구에게 노하시면서 저들에게 욥을 인식시켜 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 종 욥에게 너희가 말한 것들이 정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42:7) 계속하여 내 종 욥이, 내 종 욥의 말 같이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42:8). 하나님은 욥을 가리켜 내 종 욥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 앞에서 욥을 소개할 때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고 한 바 있습니다(1:8). 그렇다면 순경 중에도 하나님의 종이었고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종이었고 환난 후에도 하나님의 종이었던 사실입니다. 여호와의 종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최후를 설명할 때도 썼던 말입니다(34:5). 이 말은 하나님이 그가 즐겨 쓰시는 사람들, 좋아하시는 사람들,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즐겨 사용하시는 일종의 애칭과도 같습니다. 욥은 환난을 통하여 그에게 다시 한번 빛나고 영예로운 이름이 확인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환난의 태풍을 가지고 욥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욥은 죽음에 이르는 고난의 수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한 목적이었고 의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왜 의인들에게 고난이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진리였습니다. 말하자면 의인들에게 임하는 고난의 의의(意義)를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절대하신 하나님 주권 신앙을 진보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성화적 신앙을 위한 섭리적 환난이요 고난이었습니다. 그는 고난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귀로 듣기만 하였는데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고도의 영적 지경에까지 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는 고난을 통하여 죽음 준비를 제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죽음 후에 있는 천국 신앙이 더 뜨거워지고 확실해졌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는 정결한 기도와 인내를 배양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 속에서 오히려 꿀과 송이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미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난 속에서 그가 여호와의 종인 자신의 영예로운 신분이 더 분명해지고 빛나게 되었음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에게 임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절대하신 주권을 배우는 학교가 아닌가? 신앙 성장을 맛보는 성화 학교가 아닌가?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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